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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릭 루빈 (6. -end)

by Whitesheep 2024. 1. 22.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에  이르는 것, 감사해라

릭의 글이 재미있던 점은,

작업을 생물로 본다는 점이다. 예술가를 단순히 형상과 소리,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일부를 알아보고 건져내는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 참 흥미로왔다. 

따라서 예술은 종점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 주기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예술은 모든 대화를 "연다"는 앞장에서의 강조와도 일맥상통한다. 

 

우주의 속삭임 (아마도 영감)은 의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늘 그것을 환영하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 

예술은 결과로 귀결되는 단선적인 목적 추구가 아니라 "순수한 놀이"가 되어야 한다. 

 

작품이 나를 초월하는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라 (p.226) 

 

때로 실수가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 인간은 실수로 숨 쉬는 존재이다  (p. 242)

 

원재료가 나를 초월하는 거대한 무언가에서 왔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p. 280) 

 

 

 

 

현재에 머무르며 모든 가능성을 타진한다 

창작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 가능한, 이동하는 그 자체이다.  

답이 내 안에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내어줌" 이다.  

연못에 들어가서 마구 휘저으면 맑은 물이 흙탕물로 변한다. 마음의 긴장을 풀어야만 속삭임이 다가올 때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p. 233) 

 

흐름의 막힘이 느껴질 때에는 내어줌(surrender)을 통해 틈을 만들 수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머무르면서 창조하라(p.227) 

 

막히거나 길을 잃거나 더이상 내놓을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힘든 순간마다 이 사실을 떠오르자. 이 모든 게 머릿속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어떨까?(What if this is all a story?) (p.228)

 

 

부단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영감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더라도 그 영감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끊임없이 그 주변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실질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예술가와 연구자의 공통점이 있다

일이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행동하기 + 존재하기" 

 

예술가는 하루의 모든 순간에 머무른다(p.253)

 

다시 한번 명심하자. 우리는 창조하기 위해 존재한다.(p.269) 

 

번개에 집착하지 않고 번개를 둘러싼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 더 건설적인 전략이다(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