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째 릭루빈의 글만 보고 있다. 너무 흥미진진하다
내 안의 혼란을 잠잠하게 해주는 글을 오랫만에 만났다.
1. 내안의 예술가와 내 안의 장인의 충돌
장인에 관한 책은 두 권쯤 본 것 같다.
'생각하는 손'은 사놓고 완주하지 못했고 (그만큼 끌림이 부족)
Robert Greene의 Mastery는 읽는 중이다.
예술의 과정을 장인과 예술가의 충돌로 본 릭의 관점이 독특하다.
"예술가의 영감을 실물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장인에게 실망한다"
연구자로서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 실망감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니, 한편 위로가 된다.
연구자로서, 타인에게까지 닿기 원하는 그 강렬한 파장이란 무엇일까.
2. 우물의 비유
힘들게 우물물을 내리는 할아버지와 도르레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청년의 대화
"나는 늘 해오던대로 계속할 것같네.. 관심과 시간이 줄어든다면 그 물은 어떤 맛이 나겠는가? 맛이 좋을 리가 없을 걸세"
직품에 있는 에너지, 보이지 않고 측정할 수 없으나 끌어당기는 그 힘을 어떻게 관찰할수 있을까?
창조적 에너지는 행위가 아니라 작품으로 향하는 여정에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꼭 관찰해 내고 싶다.
3. 법칙
훌륭한 작품을 완성해 냈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그 팔레트를 버려라.
"힘들게 얻은 능력은 규칙을 초월한다. 당신의 가설과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라. "
연구도 그렇고, 항상 가장 넘기 어려운 대상은 나, 조금전에 성공했던 나 인 것 같다.
"예술가는 시소의 한끝만 집중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반대의 방향, 혹은 지금의 방법을 완전히 극단적으로 추구해본다면?
전자는 대단한 용기가, 후자는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절대로 초조해하면 안된다. 그저 끊임없이 위대함을 환영하는 상태에 머물러라"
4. 복제품과 진짜
헤드셋에게 그러한 속성이 있는줄 몰랐다.
모든 음을 가볍게 하고 전체 스펙트럼으로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것.
미술에도 요즘 그런 장르들이 있다. 감각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증폭시켜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헤드셋에도 효용과 가치가 있듯, 그런 장르에 대해 뭐라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헤드셋으로 듣는 음악은 절대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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